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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친일파의 유형과 주요인물 feat 선을넘는녀석들 [MBC]카테고리 없음 2020. 8. 24. 01:11반응형
전 세계에서 식민해방을 한 국가에서 유일하게 과거청산이 되지 않은 나라가 있다.
바로 그것은 대한민국.
한국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의 친일파와 그들에 대한 척결논란이 그것이다.
일찍이 1910년 공식적으로 한일병탄이 된 이후 일제 35년의 통치를 받게된 대한제국(대한민국)은
세계사에 있어 제국주의 열강의 주도권, 패권싸움에서 희생된 국가 중 하나이다.
힘이 없는 약한 나라에게 닥쳐진 운명, 그 와중에도 국가의 존망에 대해 고민하고 또 자주독립을 위해 애썼던
많은 애국지사, 우국지사분들이 계셨는데 이와 반대로 민족의 반역자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회만을 엿봤던
친일파와 매국노 또한 있었다는 것이 엄연한 역사이다.
한국의 친일파는 보통 3가지로 나뉜다.
1단계 : 매국행위를 주도한 친일파
대표적으로 을사오적과 정미칠적이 이에 해당이 된다. 개화기 너무도 힘이 없던 한국의 현실을 파악하고 발빠르게 친미, 친러 등 외세에 붙어 나라를 파는데 앞장선 친일공신들, 그 댓가로 많은 돈과 땅, 작위를 받은 사람들이 그에 해당이 된다. 그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 이완용.
이완용은 친일파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이완용의 자손 중에는 이병도라는 대표적인 친일 사학자도 있다. 아직까지 그 후손들이 대한민국에서 막강한 부와 권력을 쥐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이완용은 이재명열사에 의해 의거를 당하기도 하지만 운이 좋게 살아남기도 한다.
그러나 1세대 친일파인 이완용은 1929년에 사망하게된다.
이완용의 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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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후손이 서울대총장과 문화재청장...
대한민국 모임의 시작,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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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그리고 친일행위에 있어 가장 큰 기점이 된 사건은 아마도 1919년이다.
일제의 통치는 "무단통치" 에서 "문화통치" 로 변모한다.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또 말살하는데에는 여념이 없었으나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황국신민화 하는데에 더 열을 올린다. 일종의 유화정책을 펴기도 했는데 1919년 민족의 3.1운동은 당시에는 "실패", "자괴감"으로 받아들여지게되고 많은 사람들이 가졌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사그러들게 되는 시기이다.
20년대와 30년대에는 태어나자마자 나라를 잃은 청소년, 학생들도 있었던 때라
독립운동, 애족애국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많았을 시기이다.
본토인과 반도인으로 불릴만큼 30년 대 이후는 "황국" 일제에 어느 정도 녹아든 시기로 볼수 있다.
두 번째는
지식인의 변절 그리고 그들이 일제의 전쟁에 적극협력한 친일행위이다. 그 중에는 미당 서정주와 육당 최남선 등이 있다.
서정주의 경우는 친일파임에도 불구, 1980년 대까지 문단의 최고 권력으로 전두환 군사독재에 협력하기도 했다.
당시 지식인들 중에는 육당 최남선과 같이 기미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등의 독립운동에 애쓴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대한민국의 독립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변절, 일제가 벌인 태평양전쟁, 중일전쟁 등에 협력, 조선인들이 일본의 전쟁에
지원을 독려하는 등의 친일을 했다. 그 댓가로 많은 댓가와 지위를 얻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찾았다.
이 같은 친일의 유형은 권력부합형 친일이었고 이들 중에는 상당수 매국노의 자손 그리고
일제 조선총독부의 관리나 법원, 경찰 등에 협력하는 등의 친일행위를 해온 자들도 있다.
해방 이후 까지 살아남은 많은 친일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일본이 패망하고 민족의 독립의 날이 올지 몰랐다는 변명이다.
1940년 대를 보면 어쩌면 그건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조선어를 배우고 교육받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나서 부터 "반도인, 일본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해도 친일파에 대한 척결의 정당성을 훼손하지는 못한다.
이유는
친일행위가 정당화되고 매국행위에 대한 확실한 단죄가 없다면
역사가 주는 교훈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후대에 어떤 일이 민족에 닥칠지는 모르지만
그 훗날을 위해 미리 예방을 해야하는게 우리의 숙명이기 때문에 단죄는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온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있지만 그들을 단죄하고 그들의 통렬한 반성이 있는 이후
화해와 용서가 있어야지만 민족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MBC 선을넘는녀석들에서는 이렇게
을사오적, 정미칠적 등을 일반에 소개함으로써
최근 다소 비중이 약해진 역사교육에 대한 환기를 시켜줌으로해서
한국사회에 아직도 친일파가 있고 그들이 단죄받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조상들로 인해 그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후 지속적으로 "기회주의적 삶"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1945년 이후, 달라지지 않은 역사 안에 갇혀있다.
미국 등 2차대전의 승전국가들의 이익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대한민국은 그들의 이익 때문에
민족범죄에 대한 단죄를 이루어내기 어려웠다. 전쟁이 있었고 체제경쟁이 있었다.
그래도 매국형 친일파는 꼭 기억해야만 한다.
아직도 그들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에서 많은 자산을 갖고 정계와 학계 등을 장악하고
그들의 부를 세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940년 대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은 아직 생존해 있거나
그들의 친일로 인해 직접적인 수혜를 받아 온갖 지위와 권력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 중에 다수가 현재 미래통합당에 속한 정치인이거나 그들을 통해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김웅 광복회장은 "미래통합당"에 날선 비판을 가한것이다.
전쟁협력형 친일파 중에 대표적인 인물 중에는
독립군을 토벌하는데에 앞장선 간도특설대원 박정희(다까끼 마사오)와 백선엽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많지만 다 열거하기는 어렵다.
물론 전 한나라당 당대표 김무성의 아버지가 김용주로 일제에 협력한 유명한 친일파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참고자료
blog.naver.com/hea8800/221548616743
'악질 친일파 '김용주 아들 김무성의 자본과 권력의 이중주
'김무성 아비 김용주' 명백한 '악질 친일반민족자 확실' https://youtu.be/WGdkPw_B74M?t=2동영상-...
blog.naver.com
특히 경술국치 과정에서
서로 일제에 더 잘보이려고 경쟁하던 모습까지도 보였다.
이완용보다 더 일제에 나라를 넘기고자 애썼던 "윤덕영"은 최악의 친일파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 아직도 남아있는 친일파 또는 그들의 후손들은 부끄러움을 모르고 산다.
그 중에는 항상 권력과 돈에 편에 서서 부를 유지해온 "언론"도 있다.
조선일보가 대표적인 친일신문이다. 조선일보의 친일행위 등에 대해서는
아래의 영상이 잘 담고 있다. 우리는 그들의 민낯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언론의 부역, 친일은 반드시 폐간으로 보답을 해야한다.
특히 조선일보는
5.16군사 쿠데타, 12.12 군사쿠데타 등 대한민국이 어려울 때마다 민족을 배반하고 권력만을 쫓았던 대표적 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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